아인슈타인의 창의적 사고법, 익숙함을 넘어 모험으로

“문제를 만들어낸 사고 방식으로는 결코 그 문제를 풀 수 없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 남긴 이 명언은 그의 창의적 사고법을 완벽하게 담아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어떻게 문제를 만들어낸 사고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그 해답은 인류 최초의 이야기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아인슈타인의 창의적 사고법
아인슈타인의 창의적 사고법

프레임을 깨는 방법

기원전 2000년 수메르에서 쓰여진 ‘길가메시 서사시’의 핵심은 ‘모험’입니다.

문제가 생기면 주인공은 익숙한 곳에서 낯선 곳으로 떠나 해결책을 찾습니다.

이것이 바로 아인슈타인이 물리학 문제를 해결했던 방식이기도 합니다.

아인슈타인이 살았던 시대는 뉴턴의 고전 물리학이 지배하던 시기였습니다.

‘플랑크 상수’로 유명한 막스 플랑크조차 자신의 발견이 뉴턴 물리학으로 설명되지 않아 괴로워했을 정도였습니다.

이는 같은 문화에서 공유하는 가치와 신념이 모두에게 ‘프레임’이 되어, 모든 것이 그 안에서 설명되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프레임은 사진 촬영을 생각해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무언가를 보기 위해서는 초점을 맞추고 틀 안에 넣어야 하는데, 이 틀이 바로 프레임입니다.

프레임은 무엇을 보게 하지만, 그 대가로 틀 밖의 것은 보지 못하게 합니다.

우리 모두는 이런 프레임에 갇혀 살아갑니다.

아인슈타인, 새로운 시각으로 물리학을 뒤집다

일반적인 사람들과 달리, 아인슈타인은 뉴턴 물리학이라는 기존 프레임에서 벗어났습니다.

즉, 문제를 새롭게 바라보기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 1905년, 당시 26세였던 그는 네 편의 논문을 통해 기존 물리학을 완전히 뒤바꾸는 업적을 이루었습니다.

그는 말 그대로 ‘문제를 만들어낸 사고방식’에서 벗어났던 것입니다.

아인슈타인은 상대성이론을 발견한 과정에 대해 “상대성이론은 직관을 통해 등장했고, 그 직관의 원동력은 음악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또한 “나는 종종 음악으로 생각한다. 음악으로 공상하고, 음악적 형상으로 내 삶을 본다“고 했습니다.

아인슈타인이 “음악으로 생각한다”고 한 것은 말 그대로 음표로 계산했다는 의미가 아니에요.

이건 그가 문제를 바라보는 방식에 관한 거예요.

음악은 패턴, 리듬, 조화,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잖아요.

아인슈타인은 물리학 문제를 풀 때도 이런 음악적인 감각을 사용했어요:


  1. 다른 관점으로 보기: 음악을 들을 때 우리는 개별 음표보다 전체적인 멜로디를 느끼죠. 아인슈타인도 물리학 문제를 풀 때 세부 사항보다 전체 그림을 보려고 했어요.
  2. 패턴 찾기: 음악에는 반복되는 패턴이 있어요. 아인슈타인은 우주의 법칙에서도 이런 패턴을 찾으려고 했죠.
  3. 직관 사용하기: 작곡가가 멜로디를 느끼듯이, 아인슈타인은 수학 공식만으로는 접근할 수 없는 문제에 직관을 사용했어요.
  4. 아름다움 추구하기: 좋은 음악은 아름답잖아요. 아인슈타인은 물리학 이론도 단순하고 아름다워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상대성 이론을 생각할 때 아인슈타인은 “빛의 속도로 달리는 빛 옆에서 빛을 본다면 어떻게 보일까?“라는 상상을 했어요.

이건 수학적 계산이 아니라, 마치 음악가가 멜로디를 상상하듯 직관적으로 상황을 그려본 거예요.

쉽게 말해, 아인슈타인에게 음악은 창의적 영감의 원천이었어요.

물리학 공식으로 풀 수 없는 문제를 다른 방식으로 상상하고 생각하는 데 도움을 준 거죠!

이를 통해 그는 문제를 더 창의적으로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아인슈타인 천재성
아인슈타인 천재성

아인슈타인의 삶과 사고방식

1879년 3월 14일 독일 울름에서 태어난 아인슈타인은 어린 시절부터 남다른 모습을 보였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말이 늦어 부모가 의사와 상의할 정도로 걱정했고, 말을 시작한 후에도 작은 목소리로 되풀이하는 버릇이 있어 하녀에게 ‘멍청한 아이’를 의미하는 ‘데페르테’라고 불렸습니다. 심지어 친척들은 그를 ‘자진아’가 아닌가 의심했습니다.

학교에서도 아인슈타인은 주입식 교육을 싫어하고 끊임없이 ‘왜?’라고 질문했기 때문에 선생님들과 마찰을 빚었습니다. 한 선생님은 그의 생활기록부에 “학과과정을 따라가는 것은 둘째치고 정상적인 생활이 가능할지 의심이 든다”라고 적었고, 결국 그는 신경 쇠약이라는 진단서를 제출하고 학교를 그만두게 됩니다.

이후 아인슈타인은 숙부 야곱에게 수학을 배우며 그 재미를 알게 되었고, 점차 천재성을 꽃피우기 시작했습니다. 스위스의 고등학교로 진학한 후에는 활발하고 낙천적인 본래 기질을 드러내며 2등으로 학교를 마쳤습니다. 그는 이 학교를 “유럽의 오아시스라 할 수 있는 스위스에서, 잊지 못할 오아시스였다”라고 극찬했습니다.

취리히 연방공과대학에 입학한 아인슈타인은 제멋대로인 학생이었습니다. 좋아하는 과목이 아니면 출석도 제대로 하지 않았고, 시험이 코앞에 닥쳐서야 준비해 간신히 통과하는 수준이었습니다. 노트를 빌려주는 친구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졸업은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특허사무소에서 시작된 논문

1900년 졸업 후 스위스 시민권을 취득한 아인슈타인은 1902년 베른의 특허사무소 심사관으로 일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나중에 이 시기를 “가장 멋진 아이디어들이 부화된 곳“이라고 회상했습니다.

일하면서 틈이 날 때마다 도서관을 다니며 연구를 계속했고, 모임을 만들어 토론도 즐겼습니다.

1905년, 특허사무소에서 일하는 동안 아인슈타인은 그의 천재성을 세상에 드러내는 결정적인 논문들을 연달아 발표했습니다.

아인슈타인은 시간과 공간이 절대적이지 않고 관측하는 입장에 따라 바뀐다는 상대성 이론을 주장했습니다.

1919년 영국 탐사대가 개기일식을 통해 일반 상대성 이론을 검증함으로써, 그는 뉴턴의 고전 역학적 세계관을 마감했습니다.

그리고 1921년에는 물리학에 기여한 공로로 노벨상을 받았습니다.

살아있는 지식을 추구하다

아인슈타인은 유대인으로서의 사고방식을 중요시했습니다.

유대인들은 빠르게 정답을 찾는 것보다 정답을 찾아가는 사고 과정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들에게 선생님은 정답을 알려주는 사람이 아니라 생각하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사람입니다.

아인슈타인은 어린 시절부터 주입식 교육뿐만 아니라 고대 그리스의 기하학 법칙과 물리학 법칙들에도 의문을 품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해라’는 말에 한 번도 ‘네’라고 대답한 적이 없었고, 이유를 알아내고서야 이해했습니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그가 유대인이라는 것과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창의적 사고를 위한 아인슈타인의 방법론

아인슈타인의 생각법을 일상에 적용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먼저, 이분법으로 생각하지 않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보통 우리가 직면하는 문제는 ‘무엇을 하거나 하지 않거나’의 선택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프레임을 벗어나려면 문제 그 자체에 대해 생각해봐야 합니다.

선택지가 주어지면 우리는 프레임에 갇히게 되므로, 마치 물 위에 뜬 기름처럼 문제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의 삶에는 풀리지 않은 문제들이 가득합니다.

만약 당신에게도 어떤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이를 익숙한 곳에서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야 하는 모험의 신호로 여기세요.

역사 속 모든 이야기에서 이런 신호를 따랐던 주인공들만이 진정한 영웅이 되었습니다.

아인슈타인의 생각법을 따라 기존의 프레임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각으로 문제를 바라보세요.

자신만의 취미나 관심사를 통해 독특한 관점을 가져보세요.

그것이 바로 천재 아인슈타인이 우리에게 남긴 가장 값진 유산일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