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와 폭염이 겹치며 농산물 가격이 치솟고 있다.
배추 한 포기는 3,679원, 열무 1kg은 2,524원, 적상추 100g은 974원.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가 6월 29일 발표한 농산물 가격이다.
주요 농산물 가격이 전월 대비 평균 19%가량 상승했다.
소비자들이 자주 구매하는 농산물일수록 가격 상승 체감도는 크다.
매주 장을 보며 구매하는 채소류는 조금만 올라도 가계 부담이 커진다.
특히 1인 가구나 자취생처럼 대량 구매가 어려운 소비자일수록 타격은 더 크다.

이러한 가격 상승의 배경에는 애그플레이션(Agflation)이 있다.
애그플레이션이란 농업(Agriculture)과 물가 상승(Inflation)을 합친 단어로 기후 변화, 바이오연료 수요 증가 등으로 인해 농산물과 식품 가격이 오르는 현상이다. 쉽게 말해 농산물 가격이 오르면서 전체 물가가 함께 뛰는 현상이다.
2007년 세계 식량 위기 당시 처음 주목받기 시작한 이 단어는 현재 기후 변화로 인해 화두로 떠올랐다.
올해 6월 세계기상기구(WMO)가 발표한 <2025~2029년 기후 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2025~2029년까지 5년 동안 폭염과 가뭄, 큰비가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경고했다.
그리고 이 기간에 적어도 한 해는 역대 최고 기온을 경신할 가능성이 80%에 이른다.
기온이 해마다 오르면 토양 수분이 부족해지고 농작물이 자라기 어려운 환경이 된다.
결국 농작물의 생육 환경은 악화되고 이는 세계 식량 생산량 감소로 이어진다. 영국 과학 전문지 <Nature>는 6월 18일(현지 시각) 지구 기온이 1°C 상승할 때마다 한 사람당 하루 섭취 열량이 평균 120kcal씩 줄어든다고 발표했다.
또한 온실가스 배출이 증가하는 상황에서는 2100년까지 주요 작물의 수확량이 평균 30%가량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다.
특히 한국의 기온 상승 속도는 세계 평균을 웃돈다. 유라시아 대륙과 태평양 사이에 위치해 대륙성 기후와 해양성 기후의 영향을 동시에 받기 때문이다.
기상청에 따르면 1912~2020년까지 한국의 연평균 기온은 10년마다 0.2℃씩 상승해 세계 평균(0.07℃)보다 3배 빠르게 올랐다.
2024년 연평균 기온은 14.5℃로 1911년 이후 113년 만에 가장 뜨거운 해로 기록됐다.
이 같은 기온 상승은 물가에도 영향을 끼친다. 조병수 한국은행 물가연구팀 차장은 한국의 한 달 평균 기온이 전년 같은 달보다 1°C 높아지면 농산물 가격 상승률이 0.4~0.5%p 오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농산물 가격 상승은 가공식품과 외식 메뉴의 가격까지 연쇄적으로 끌어올린다.
식품 산업 전반의 핵심 원재료가 곡물이기 때문이다.
결국 원재료비 상승으로 먹거리 물가가 전반적으로 오르면서 소비자 부담이 커진다.

그러나 한국은 곡물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한다.
2024년 6월 21일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발표한 <통계로 본 세계 속의 한국농업>에 따르면, 2021~2023년까지 한국의 평균 곡물 자급률은 19.5%에 불과했다. 밀과 옥수수 자급률은 0%에 가깝고 콩도 10%를 넘지 못한다.
가공식품 전반은 물론이고 사료용 곡물도 대부분 외국에서 수입한다. 하지만 농지 면적은 해마다 줄고 농업 생산자의 평균 연령은 높아지고 있다.
여기에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고환율, 무역 갈등 등이 함께 작용하면서 국제 곡물 가격은 쉽게 내려가지 않고 있다.
더욱이 이상 기후로 인한 생산 불안정성까지 더해지며 상승세가 지속하는 상황이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는 올해 4월 세계 식량가격지수가 128.3포인트를 기록해 전년 동기 대비 7.6% 올랐다고 발표했다.
특히 곡물 가격지수는 전월 대비 1.2% 상승했다. 이처럼 수입 곡물 가격이 오르면서 이를 원재료로 사용하는 식품 가격도 상승하고 있다.
결국 ‘곡물 가격 상승 → 식품 제조비용 증가 → 소비자 가격 전가’라는 악순환을 반복하고 있다.
애그플레이션은 이제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다. 이상기후가 불러온 식량 위기는 밥상 위에 현실로 다가왔다.
주로 해외 요인에 의해 발생하는 구조적인 문제인 만큼 국내 대책만으로는 근본 해결에 한계가 있다.
특히 한국처럼 곡물 수입 의존도가 높은 국가는 가격 변동에 더욱 취약하다.
기후 변화와 애그플레이션의 시대에서 식탁 안전망을 다시 점검해야 할 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