폰 노이만 | 인공지능의 아버지, 천재 중의 천재

역사 속에는 뉴턴, 아인슈타인, 테슬라, 슈뢰딩거와 같이 ‘천재’라 불리는 수많은 인물이 존재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천재들 사이에서도 단연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인물이 있습니다.

바로 ‘천재 중의 천재‘로 불린 폰 노이만입니다.

그의 천재성은 동시대 과학자들조차 “이건 인간의 뇌가 아니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습니다.

폰 노이만, 인공지능의 아버지, 천재 중의 천재
폰 노이만, 인공지능의 아버지, 천재 중의 천재

폰 노이만, 그는 누구인가?

1903년 12월 28일, 폰 노이만은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유대인 은행가 막스 노이만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그의 비범함은 명확했습니다.

놀랍게도 6살에 이미 8자리 숫자를 암산할 수 있었고, 8세에 미분과 적분의 개념을 완벽히 이해했습니다.

그의 기억력 또한 탁월해 파티에 온 손님들의 이름, 주소, 전화번호를 한 번 듣고 모두 기억해 배웅할 때 정확히 읊어주었다고 합니다.

폰 노이만의 아버지는 그의 교육에 각별한 신경을 썼습니다.

그는 7개 국어를 익혔으며, 46권짜리 세계사 전집을 통째로 외우고 브리태니커 백과사전까지 섭렵했습니다.

8살에 영재들이 다니는 김나지움에 입학했습니다.

당시 같은 학교에 다녔던 유진 위그너(훗날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에게 집합론과 정수론을 가르칠 정도였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과 맨해튼 프로젝트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폰 노이만은 핵무기를 비밀리에 개발하는 맨해튼 프로젝트에 참여했습니다.

그는 플루토늄형 원자 폭탄 ‘팻 맨’을 위한 ‘폭축렌즈’의 개발을 담당했습니다.

그리고 폭발의 파면 구조에 대한 ‘ZND 이론’을 확립했습니다.

10개월에 걸친 수치 해석을 통해 폭약을 32면체에 배치함으로써 원자 폭탄이 실현 가능한 무기임을 증명했습니다.

맨해튼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다른 학자들이 문제에 부딪혔을 때 폰 노이만을 찾아갔습니다.

그 상황에서 그는 마치 볼링핀을 쳐 넘어뜨리듯 문제를 해결했다고 합니다.

핵무기의 위력을 본 많은 과학자 프로젝트를 비판했지만, 폰 노이만은 미국의 핵 개발을 꾸준히 지지했습니다.

이후 미국 국방 자문 위원과 원자력 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했습니다.

폰 노이만
폰 노이만

폰 노이만의 주요 업적들

맨해튼 프로젝트 당시 미군은 미사일의 탄도, 탄착점, 폭발력 등을 계산하기 위해 초대형 계산기 ‘에니악’을 사용했습니다.

그러나 이 초기 컴퓨터는 계산만 할 수 있을 뿐 기억 능력이 없었습니다.

폰 노이만은 컴퓨터 공학자들도 생각하지 못했던 획기적인 ‘프로그램 내장 컴퓨터’ 이론을 개발했습니다.

1950년, 그는 ‘에드박(EDVAC)’이라는 최초의 프로그램 내장 컴퓨터를 개발했습니다.

여기에 설치된 ‘폰 노이만 구조’는 오늘날의 스마트폰을 포함한 현대 컴퓨터의 기본이 되었습니다.

데이터와 프로그램 메모리를 구분하지 않은 이 모델은 지난 75년간 컴퓨터 설계의 근간이 되어왔습니다.

게임 이론의 창시자

폰 노이만은 1944년 경제학자 모르겐슈테른과 함께 ‘게임 이론’을 처음 제시했습니다.

이는 경쟁 상대의 반응을 고려해 자신의 최적 행위를 결정하는 의사결정 이론입니다.

폰 노이만의 게임 이론은 현대 경제학, 정치학, 군사 전략, 그리고 인공지능 연구에까지 깊은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그는 소련에 대응하여 상호확증파괴(MAD)라는 균형 정책을 만드는 데도 관여했습니다.

이는 “너도 죽고 나도 죽는다”라는 개념으로 핵전쟁이 터지면 양쪽이 모두 파멸하므로 오히려 전쟁을 억제하는 힘이 된다는 논리였습니다.

양자역학과 수학적 기초

폰 노이만은 수학적으로 엄밀한 방식으로 양자역학의 기초를 정립하는 데 기여했습니다.

그는 양자역학에서 사용하는 힐베르트 공간 개념을 도입하여 물리학과 수학을 연결했습니다.

‘양자역학의 수학적 기초’라는 중요한 논문을 발표했습니다.

그의 연구는 양자역학을 보다 체계적으로 설명할 수 있게 했고, 오늘날 양자 정보 과학의 기반이 되었습니다.

폰 노이만은 말년에 인공지능 연구에 몰두했습니다.

그는 존재를 ‘정보’로 파악하고, 존재의 생명을 정보의 ‘복제’로 이해했습니다.

기본적인 원칙만 정해주면 스스로 진화하는 프로그램 ‘오토마타’를 구상했습니다.

그리고 ‘정보’와 ‘복제’를 근간으로 구현되는 학문 분야를 ‘사이버네틱스(인조 공학)’이라 명명했습니다.

그는 사이버네틱스가 인간을 능가하게 되는 최초의 전환점을 ‘특이점’이라 불렀으며, 자기 복제 개념을 연구하여 셀룰러 오토마타 이론을 발전시켰습니다.

이는 오늘날 인공지능 및 생물학적 시스템 연구에 큰 영감을 주고 있습니다.

한계를 모르는 두뇌

폰 노이만과 함께 일했던 사람들은 그를 “한 번 들은 것은 절대 잊지 않는 사람”, “몇 개의 대화 주제를 동시에 오갈 수 있는 사람”이라고 표현했습니다.

그는 초고속 사고를 하는 인물이었고, 문제를 설명하면 이미 답을 내놓고 있었으며, 상대가 설명을 끝내기도 전에 결론을 도출했습니다.

아인슈타인조차 그를 보고 “너무 빨라서 따라가기 어렵다”고 말했을 정도였습니다.

그의 논문 생산성도 놀라웠습니다.

일생 동안 순수수학 논문 60편, 응용수학 논문 60편, 물리학과 경제학 등 다양한 분야의 논문 30편을 발표했습니다.

한번은 “현대 수학을 얼마나 알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라는 질문에 신중하게 생각한 후 “28퍼센트“라고 구체적인 숫자로 대답했습니다.

알면 알수록 모르는 것이 더 많다는 학문의 진리를 알면서도, 그는 수학이라는 학문의 전체 모습을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컴퓨터, 경제학에서 활용하는 게임 이론, 군사 전략, 양자역학의 수학적 기초, 그리고 인공지능에 이르기까지 그의 사상과 이론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만약 그가 유흥거리에 시간을 쏟지 않고 과학과 문명 발달에만 집중했다면, 인류 문명을 적어도 몇 백 년은 앞당겼을 것이라는 평가도 있습니다.

폰 노이만은 단순한 천재를 넘어, 세상의 패러다임을 바꾼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모든 것을 알고 싶어 했던 인간“, 그리고 “생각하는 속도조차 인간을 넘어섰던 두뇌”였습니다.

그래서 과학자들 사이에서 ‘반인반수’, 즉 반은 인간, 반은 화성인이라는 별명을 얻을 만큼 독보적인 천재성을 발휘했던 것입니다.

그의 명언 중 “만약 아무도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수학이 아니다”라는 말은 복잡한 이론도 명쾌하게 설명하려 했던 그의 태도를 보여줍니다.

또한 “우리는 무엇을 아는지, 그리고 무엇을 모르는지를 알아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지식이다”라는 말은 그의 지적 겸손함을 엿볼 수 있게 합니다.

폰 노이만 같은 인물이 미래에 또 나올지는 알 수 없지만, 그가 남긴 업적들과 그의 천재성은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기술과 이론의 근간을 이루며 여전히 인류의 발전을 이끌고 있습니다.